1. 상대문학
상대문학(上代文學)이란 문자전래 이전의 구비문학 시대에서 794년 헤이안쿄(平安京)로 천도하기 이전의 야마토(大和)와 나라(奈良)시대의 문학을 가리킨다. 일본의 문학사에서는 상대문학을 상고문학, 고대문학 또는 고대전기문학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상대를 다시 아스카(飛鳥) 일대에 도읍이 있었던 야마토 시대와, 헤이조쿄(平城京, 지금의 나라)로 천도한 710년 이후의 나라(奈良) 시대로 나눌 수 있다.
야마토 시대의 일본 열도에는 문자 전래 이전에 오랜동안의 구두전승 시대가 지속되었으나, 4세기경 백제의 왕인(王仁)박사가 가지고 간 『논어』와 『천자문』에 의해 본격적인 기록문학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6세기 말 스이코(推古) 천황의 섭정을 하게 된 쇼토쿠태자(聖德太子, 574∼622)는 관위 12계와 헌법 17조를 제정하고, 607년에는 오노노 이모코(小野妹子)를 견수사(遣隋使)로 파견하여 대륙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입하여 중앙집권국가 건설을 지향하였다. 이 때 고구려, 신라, 백제의 도래인들은 아스카(飛鳥)의 호류지(法隆寺)를 중심으로 번창했던 국지적인 문화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야마토 조정은 다이카(大化, 645)의 개신과 임신(壬申, 672)난을 거치면서 더욱 강력한 중앙집권제에 의한 율령국가로 발전해 갔다. 특히 임신(壬申, 672)난에서 승리한 덴무(天武)천황은 율령을 정비하고 국사 편찬에 착수했는데, 701년에는 대보율령(大寶律令)이 제정되어 명실공히 고대율령국가의 건설을 완성하게 된다.
나라(奈良)시대는 710년 헤이조쿄로 천도하여 794년 헤이안쿄(平安京, 현재의 교토)로 천도할 때까지의 80여년간이다. 견당사(遣唐使)로 파견된 많은 유학생과 유학승들은 당나라에 건너가 선진의 대륙문화를 익혔다. 한편 한반도의 삼국통일 후 신라와는 관계가 나빠졌지만, 발해와는 727년부터 약 200년 동안 30여회의 국사를 교환하며 활발한 무역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대륙문화의 수입으로 쇼무(聖武)천황 때의 연호인 덴표(天平, 729∼749) 연간에는 당나라와 서역 등의 영향을 받은 덴표 문화가 번창하게 된다.
문학 분야에서는 중앙집권의 상징으로 편찬된 『고지키(古事記, 712)』와 『후도키(風土記, 713)』, 『니혼쇼키(日本書紀, 720)』에 천황가나 민간에 전승되어 온 신화·전설·설화나 가요가 기록되었다. 특히 와카(和歌)의 모태가 되는 상대의 가요는 『고지키』와 『니혼쇼키』에 많이 실려있는 관계로 이를 기키가요(記紀歌謠)라고 한다. 기타 한 씨족의 전기를 기술한 『다카하시우지부미(高橋氏文)』나 『고고슈이(古語拾遺)』 등은 상대의 구두전승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상대의 일본인들이 믿었던 언령신앙(言靈信仰)에 바탕을 둔 종교의례의 표현으로 노리토(祝詞)와 센묘(宣命)가 있다. 한편 시가문학에 있어서는 한시집 『가이후소(懷風藻, 751)』와 와카의 이론서인 『가쿄효시키(歌經標式, 772)』가 성립되고, 이 시대 말기에는 일본민족 최대의 서정시집인 『만요슈(萬葉集)』가 편찬되었다. 그리고 헤이안 시대에 들어서 편찬된 일본 최초의 불교설화집 『니혼료이키(日本靈異記)』도 상대시대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1.1 상대가요의 전승
상대가요는 문자가 없었던 시대에 고대인들이 집단으로 읊었던 노래인데, 『고지키』, 『니혼쇼키』, 『후도키』, 『만요슈』, 붓소쿠세키카(佛足石歌), 『긴카후(琴歌譜)』와 헤이안 시대의 가구라우타(神樂歌)나 사이바라(催馬樂) 등에서 그 형태를 찾을 수 있다. 상대가요의 소재는 남녀의 연애, 농경생활과 관련한 노동과 제사, 전투, 주연(酒宴) 등 인간의 본능적인 생활 전반에 걸쳐있다.
현존하는 상대가요는 약 300수 가량 되는데, 『고지키』에 113수, 『니혼쇼키』에 128수, 『후도키』에 13수, 『붓소쿠세키카』에 21수, 『긴카후』에 22수, 『고고슈이(古語拾遺)』에 1수, 『만요슈』에 약간 남아 있다. 상대가요의 가체(歌體)로는 가타우타(片歌), 세도카(旋頭歌), 장가(長歌), 단가(短歌), 붓소쿠세키카(佛足石歌) 등이 있다. 상대가요의 음수율은 가장 짧은 가타우타가 「5·7·7」이며, 세도카는 「5·7·7·5·7·7」, 장가는 「5·7· 5·7· 5·7 ‥‥‥ 7」, 단가는 「5·7·5·7·7」, 붓소쿠세키카는 「5·7·5·7·7·7」이다. 이 중 단가는 상대가요의 약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후 일본시가의 가장 대표적인 가체가 된다.
일본의 상대가요에는 집단으로 노래하는 우타가키(歌垣)라고 하는 것이 있었는데, 관동지방에서는 이를 가가이(조歌)라고 했다. 중국이나 한반도로부터 전해진 우타가키의 기원은, 봄 가을에 마을의 남녀가 산상(山上)이나 해변의 신성한 장소에서 가무를 하며 농경의례(農耕儀禮)의 풍요를 기원하는 종교행사였다. 그러나 점차로 종교행사의 성격은 옅어지고 남녀가 서로 배우자를 구하고 가무를 즐기는 행사로 변질되었다. 즉 상대가요가 읊혀지게 된 종교행사나 농경의례, 그리고 남녀의 애정표현이 바로 시가문학의 기원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후도키』나 『니혼쇼키』, 『만요슈』, 『쇼쿠니혼기(續日本紀)』 등에는 우카가키에서 읊은 것으로 보이는 가요가 전해지고 있다. 또한 가시마(香島) 고을이나, 쓰쿠바(筑波) 고을, 기시마(杵島, 현재의 사가현) 고을 등은 우타가키(歌垣)가 행해졌던 지명으로 알려져 있다. 우타가키는 가요를 매개로 남녀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행사였으며, 이러한 우타가키가 행해지는 장소에서는 남녀의 성(性)이 해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상대가요는 『고지키』와 『니혼쇼키』에 기술되는 시점에서 왕권의 세례를 받게되어 천손강림과 건국신화 등 신화적인 요소가 부여되고 원래의 순수성은 사라지게 된다. 즉 촌락 공동체의 우타가키에서 출발한 상대가요가 야마토 조정의 왕권확립을 위한 궁정가요로 흡수되어 버린 것이다. 또한 기키가요에는 도읍을 떠나 지방을 방황하다가 읊은 망향가(望鄕歌)나, 동요(童謠), 영웅의 죽음을 애도하여 장례를 치를 때 읊는 상대가요도 다수 남아있다.
이 이외의 상대가요로는 붓소쿠세키카(佛足石歌)와 『긴카후(琴歌譜)』가 있다. 붓소쿠세키(佛足石)란 석가모니의 발자취를 새긴 돌을 말하는데, 붓소쿠세키카란 법회 등에서 부처를 예찬한 노래를 돌에 새긴 것이다. 현존하는 최고의 붓소쿠세키카(佛足石歌)는 753년 나라의 야쿠시지(藥師寺) 경내에 세워진 노래비에 21수가 남아있다. 한편 『긴카후』는 일본 고유의 악기인 6현금을 위한 악보에 기술된 상대가요이다.
1.2 시가집의 편찬과 가론
『가이후소(懷風藻)』는 751년에 오미노 미후네(淡海三船, 722∼785) 등에 의해 편찬된 일본 최고의 한시집이다. 『가이후소』의 작자는 모두 64명이며 약 120편의 한시가 작자별 연도별로 정리되어 있는데, 그 대부분이 5언고시의 시형이다. 시의 내용은 유람(遊覽), 시연(侍宴), 연회 등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시인의 개성적인 작품은 비교적 적은 편이다. 또한 20명 정도의 작가가 『만요슈』와 겹치므로 한시와 와카의 교류와 영향관계를 알 수 있는 좋은 자료라 할 수 있다.
『만요슈(万葉集)』는 나라시대 말기(759년 이후)에 오토모노 야카모치(大伴家持) 등에 의해 편찬된 일본 최고 최대의 가집으로 와카(和歌)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만요슈』에서는 개인의식이 싹틈에 따라 집단으로 읊혀졌던 상대가요가 점차 쇠퇴하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개성적인 와카를 많이 읊게 되었다. 또한 음수율도 5·7이 정형화되고, 음송(吟誦)하는 가요에서 문자로 기술한 가집이 편찬된 것이다.
히라가나·가타카나의 발명 이전이기 때문에, 『만요슈』의 표기는 한자의 음훈을 이용하거나 1자 1음식으로 표기하는 소위 「만요가나(萬葉假名)」로 되어있다. 『만요슈』는 총 20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노래수는 4500여수를 담고 있다. 이 중에서 단가가 약 4200수, 장가가 약 260수, 세도카가 약 60수, 렌가(連歌)가 1수, 붓소쿠세키카가 1수로, 단가가 전체의 93%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이를 내용별로 분류하면 조카(雜歌), 소몬(相聞), 반카(挽歌)로 나눌 수 있다. 표현방법으로는 정술심서가(正述心緖歌), 기물진사가(寄物陳思歌), 비유가(比喩歌), 문답가(問答歌), 기려가(羈旅歌) 등이 있다.
작자는 천황으로부터 관리, 승려, 농민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계층에 걸쳐 500여명이나 되고, 시대는 닌토쿠(仁德, 290∼399) 천황 때부터 759년 오토모노 야카모치의 노래까지 약 450여년에 걸쳐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래는 629년 조메이(舒明, 593∼641) 천황이 즉위한 해부터 759년까지 130년간의 작품이다. 또한 작품의 배경이 되는 지역도 야마토를 중심으로 아즈마(東國)에서 규슈(九州)에까지 걸쳐 있다.
『만요슈』는 가풍의 변천과 유력한 가인의 활동기를 기준으로 다음 4기로 나눈다. 제1기(발생기)는 다이카(大化, 645)의 개신을 전후해서 임신란(壬申亂, 672) 때까지, 제2기(확립기)는 후지와라쿄(藤原京)에 도읍이 있었던 시기로 672년부터 710년까지의 약 40년간이며, 제3기(성숙기)는 도읍을 헤이조쿄(平城京)로 천도한 710년부터 쇼무(聖武) 천황이 활약하던 나라시대 전기의 20여년간이며, 제4기(쇠퇴기)는 734년(天平 6년)부터 마지막 노래가 읊혀진 759년까지의 25년간이다. 『만요슈』는 일본 고대인의 정서를 집대성한 가집으로, 후대 와카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일반적으로 와카라고 하면 ‘야마토우타’ 즉 ‘일본의 전통시가’라는 의미이지만, 이는 헤이안 시대가 시작되는 10세기경의 일이고 그 전에 편찬된 『만요슈』에도 ‘와카’라는 표기를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여기서는 ‘서로 화답하여 지은 노래’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근세의 국학자 가모노 마부치(賀茂眞淵)는 『만요슈』의 솔직하고 소박하며 남성적인 가풍을 「마스라오부리(ますらをぶり)」라고 지적했다.